평소에도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추천 도서하면 항상 거론되는 책 중 하나인 ‘엔트로피’를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책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과학 서적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내용의 많은 부분이 비과학적이었다. 아니, 거의 모든 부분을 물리학에서의 ‘엔트로피’에 빗대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책 ‘엔트로피’에 대해 짧게 소개하면 종말 시리즈로도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이 1980년에 발간한 책으로 제러미 리프킨은 지구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변화되며 이는 결국 인간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엔트로피는 손실된 에너지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에너지를 뜻한다. 정리하면 엔트로피가 가용 에너지를 초과하는 시대를 경고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접하자마자 받은 느낌은 물리학의 개념을 인문사회영역에 도입하여 비유하며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인데 사회문제와 같은 복잡한 주제에 대해 생각을하거나 글을 쓸 때면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에 기반해 생각을 정리하곤한다. 내 주장이 다시 나의 다른 주장의 근거로 쓰이며 생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지는 것을 막기위해 그와 상반되거나 약간은 방향이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발전되는 생각에 너무 편향된 신념을 가지고 그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나만의 생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책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내 생각 중에 하나이지만 동시에 저자의 생각에 동조하기도 하며 지금 하는 나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혹여나 어떠한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검토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실제로 내가 글을 작성하거나 생각을 할 때 시간을 가장 많이 쏟는 부분이다.
과학적 오류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열역학 제2법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했다.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며 마치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처럼 주장을 펼친 것이다.
물리학에서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은 열적으로 ‘고립된 계’에서 매 시각마다 계의 거시상태의 엔트로피를 고려하였을 때, 엔트로피가 더 작은 거시상태로는 진행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립된 계’는 ‘열린 계’에 대응되는 단어로 외부 계와 열, 일, 에너지뿐만 아니라 물질의 교환도 이루어지지 않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우주를 독립 계로 본다. 지구는 당연하게도 열린 계이다. 우주의 수많은 물질들과 상호작용하며 에너지를 교환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지구를 고립된 계로 두고 열역학 제2법칙을 적용하였다. 이는 심각한 오류를 초래한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주장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냉장고는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모터를 돌리고 냉매를 압축하고 팽창시키며 냉장고 안을 차갑게 만든다. 모터를 가동시키면 냉장고 뒤에 열을 방출하게끔 만들어놓은 열판은 뜨거워지고 냉장고 안은 차가워진다.
만약 냉장고를 독립된 계로 본다면 냉장고는 온도가 낮은 냉장고 안에서 온도가 높은 열판으로 열이 흐르는 것이 된다. 당연히 제2법칙에는 완전히 위배된다. 실제로 냉장고 안에서 처럼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간에 무조건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제2법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의 증가는 고립된 계의 전체 총 엔트로피의 증가를 의미한다.
물론 지구는 태양열의 복사열로 인해 뜨거워지기도 하고 달의 중력에 의해 파도가 생기기도 하며 운석이 떨어지기도, 위성을 쏘아 올리기도 하는 명백한 열린 계이다. 그러나 지구의 질량에 비해 정도가 미미해 닫힌 계로 보기도 한다. 고립된 계는 절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가 디지털타임스에 실은 글을 인용하여 조금만 더 이를 비판하자면 열역학을 적용하려면 그 구성원의 수가 원자나 분자의 경우처럼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아야만 하는데 지구의 60억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 열역학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처음부터 엄청난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이외에도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에는 너무 많은 모순들이 있다. 오죽하면 타임지에서는 제레미 리프킨을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받는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어떻게 관음충으로 성장하는지에 대한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어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 논문에서도 곤충군집체의 생물학적 발생과 진화과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빗대어 해석하였다. 과학적 근거를 들고 싶다면 자의적으로 해석한 논리에 대한 타당성도 검토하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논문은 이것 말고도 대부분이 너무나 엉터리지만..)
“엄밀하게 정의된 과학 용어를 자의적으로 마구 해석해서 이끌어낸 결론은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칫하면 애써 찾아낸 과학 지식의 가치를 떨어뜨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덕환 교수
환경보호..?
책을 읽고 나서 제레미 리프킨에 관한 영상이나 정보들을 좀 더 찾아봤는데 한국 메스컴에도 부족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환경론적 주장을 했었다. 댓글도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반면, 무조건 믿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장 ‘엔트로피’를 인터넷에 검색하여 서평을 보면 대부분 ‘이제 저 엔트로피 생활을 해서 환경보호를 해야겠다.’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고있다.. 이 책에서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의 파멸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고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으며 그저 무기력하게 맞이 할 수 밖에없고 그것을 천천히 오도록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대안이 있을 수 도 없다.
내가 보는 환경오염의 해결책은 제레미 리프킨과 전혀 반대로 기술발전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인간의 파멸을 천천히 와달라고 기도하며 무기력하게 맞이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힘써볼 것이다.
제대로된 근거도, 이유도 말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원전이나 없애라고 떼쓰는 극단적 환경론자들의 좋은 자료가 될 법한 책이었다.
책 ‘엔트로피’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판적인 자세’의 중요성이다. 현재 이렇게 사실과는 거리가 먼, 그저 말만 ‘그럴듯 한’ 정보들이 정말 많고 그런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현재 사회에 많은 문제들도 이러한 무비판적인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비판적인 자세에 대한 생각은 아래글의 마지막 부분에 있다.